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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2일 화요일

다가와 다가와줘 베이베

동갑내기 사촌이 놀러왔다. 엄밀히 말하면 나보다 4개월 먼저 태어났지만 학교를 일찍들어간 나이기에 거의 친구처럼 지냈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지금 회계사 준비를 하고 있다. 집에 놀러온 기념으로 할머니,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밖에서 먹기로 했다.

집에서 약 8분을 걸으면 '여왕 갈매기'라는 고깃집이 나온다. 갈매기살, 곱창, 뽈살 등 다양한 부속을 파는 가게인데 주인이 장사를 잘한다. 야채와 소스는 기본적으로 셀프지만 바쁜 와중에도 우리 테이블을 챙겨준다. 저녁 6시 반인데 가게 밖 테이블에 손님이 가득하다. 해가 길어지고, 날씨가 더워지는 것과 여왕 갈매기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사람이 제법 많아 주인에게 물어보니 이런적은 처음이라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역시 여왕님이다.

마늘소스에 적당히 기름이 발라진 갈매기살을 한 점, 오동통한 질감과 새햐안 곱이 있는 곱창을 한덩이, 빨간 자태에 쫀득한 힘줄을 뽐내는 뽈살 한 점을 불판위에 올렸다. 슉슉 쪼그라드는 단백질들을 보며 입에 군침이 돌았다. 아버지가 시키신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며, 콩나물과 파를 겨자 소스 버무렸다.

외삼촌 건강은 어떠시니, 사촌의 동생은 학교 잘 다니니 이런저런 근황을 주고 받았다. 아버지는 얼마 전 강원도 방태산 휴양림으로 떠난 등산 이야기를 하셨다. 나와 동생이 함께한 세부자의 등산이 꽤나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저번주에는 어머니와 함께 또 등산을 가셨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조금 두꺼워진 것 같다며, 사촌에게도 시간되면 함께 가자고 말하셨다. 한잔에도 붉어지는 얼굴이 꼭 거울을 보는 듯 했다. 역시 저는 당신의 핏줄입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유난히 막걸리가 잘 넘어갔다. 꿀꺽꿀꺽 시원했다. 아마 사촌이 옆에 있어서 더 맛있게 먹지 않았을까? 원래 술을 잘 마시는 녀석은 얼굴하나 변하지 않았다. 역시 어머니 집안은 강하다. 시켰던 고기접시를 비우고 가게 밖을 나서는 데 바닥이 살짝 움직였다. 푸른색 하늘과 불타는 내 얼굴이 대비됐다.

부모님은 스타벅스에 가시고 우리는 와바로 향했다. 혜화동에서 친구 추천으로 와바 생맥주를 마신적이 있었는데 꽤 괜찮았다. 무엇보다 따로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되기에 배부른 사람에게 딱이다. 생맥주 두 잔을 시키고 팝콘을 집었다. 노란색 버터와 짭조름한 소금이 묻은게 맛있었다. 영화관에서 코카콜라와 먹는 팝콘은 이런 맛을 낼 수 없다. 짠 건배를 하고 크림과 맥주를 마셨다.

잔을 비우고 '둔켈'을 시켰다. 사촌이 편의점에서 종종 사먹는 흑맥주란다. 생맥주 값의 두배가 넘는 둔켈잔을 성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달달한 첫 맛, 심심한 듯 한 목넘김, 알싸한 향이 혀를 감쌌다. 이맛이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렇게 먹기를 한 시간, 지갑에서 만원짜리를 꺼내 함께 계산을 했다. 밤이 왔고, 하얀 신발이 팽그르르 돌았다. 취기가 올라왔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 갈증이 났다. 안경을 쓰고 시간을 보니 새벽 2시 45분. 어느새 잠들었나보다. 냉수를 한 컵 마시고 다시 누웠는데 잠이 안왔다. 내일 일정 때문에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그럴수록 뇌가 빠르게 돌아갔다. 결국 책상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하고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블로그가 생각나서 무작정 타자를 쳤다.

서울 장수 막걸리와 와바 생맥주의 절묘한 조합 덕분에 신새벽을 맞이한다. 아이튠즈에서  '흙에 묻고 웃자'가 흘러나온다. 조용하고 잔잔한 분위기에 맞는 노래와 밝디 밝은 3M 스탠드가 켜진 책상에서 게시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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